마무리는 하고 넘어갈까 하여. 지난 1년을 두서 없이 회상해 봤습니다.
저는 이번 시즌을 킹메이커(그 당시에는 아이즈 오브 마치), 디센던트, 그리고 쉐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시작했어요. 먼저 킹메이커. 굿나잇 앤 굿럭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엄청난 화제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디센던트. 아 생각만 해도 또 한숨이.. 이 영화를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돌아오는 페인을 믿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배신당할 줄이야. 그래도 제 기대를 충족시킨 작품이 하나 있다면 쉐임이었어요. 사실 이 때만 해도 파스벤더는 그다지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죠. 제인 에어와 엑스맨이 개봉하기도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맥퀸의 전작 헝거에서의 연기가 강렬했기에 기대가 컸죠. 기다리고 기다리다 1월에 미국에 가게 되어 관람할 기회가 생겼는데, 정말 어찌나 먹먹했는지 몰라요. 섹스도 섹스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공허함을 소름끼치도록 훌륭하게 그려냈어요. 정작 아카데미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연초만 해도 딱히 궁금한 작품은 저 정도가 다였어요. 물론 스필버그, 스콜세지, 반 산트, 맬릭, 앨런, 크로넨버그 감독님들의 신작도 흥미롭긴 했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영화는 없었거든요. 달드리와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크게 기대도 안 했을 뿐더러 과연 올해 안에 개봉할 수 있기는 할까 싶기도 했고.
그러고 있다가.. 전주에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보고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이야기를 처음에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래도 되나? 너무 정치적인 선택 아냐? 싶었는데, 그럴 자격이 충분한 영화더라고요. 그리고 소니픽쳐클래식이 이 영화를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잘만 하면 이 영화, 외국어영화상을 넘어서서 간만에 크게 사고치는 외국어영화가 되겠구나 싶었죠.
근데.. 난데없이 프랑스에서 흑백 무성영화가 나타날 줄이야. 칸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며, 야, 이거다 싶더라니까요. 거기다 와인스타인이라니. 잘하면 이 영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제대로 휩쓸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어요. 이 때부터 작품, 감독, 남우주연, 여우조연에 아티스트를 주요 컨텐더로 추가했어요. 그리고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리 오브 라이프도 빼놓을 수 없죠. 양극단으로 갈리는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과연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려나? 아주 좋아하거나 엄청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더라고요. 아참, 드라이브도 얼마나 보고 싶던지.
초여름엔 난데없이 아카데미가 작품상 규정을 바꾸는 바람에 좀 당황스러웠었죠. 아니 열 편으로 바꾼 지 몇 년이나 됐다고 그새? 근데 이게 또 재밌어요. 작품상 후보가 투표 결과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게는 5편, 많게는 10편까지 될 수 있다니.. 고정이 아니라니.. 아.. 올해 예측은 어떻게 하라고.. 그래도 나름대로 적당한 절충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긴 했죠.
미국에서는 여름 내내 미드나잇 인 파리와 헬프의 흥행이 무섭더라고요. 이 정도의 흥행이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아카데미에서 무조건 흥할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혹성탈출: 진화의 선전도 놀라웠어요. 전혀 기대하던 작품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는 머니볼도 나름 사고를 쳤죠. 브래드 피트가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다니.
아참, 중간중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와 세나, 이 훌륭한 두 편의 영화를 본 뒤 다큐멘터리상 수상을 점치던 때도 있었지만.. 회상만 하기에도 가슴 아프니 패스.
그 뒤로는 뭐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며 정신없었죠. 온통 뒤섞여 있어서 하나하나 생각하기도 쉽지 않네요. 오늘은 이 영화가 화제였다가 다음은 바로 저 영화 이야기로 옮겨 가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평론가들의 리스트가 발표되면서 조금씩 대세를 형성해 가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알버트 브룩스처럼 떴다 지는 슬픈 경우도 있었지만.
사실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면서 오히려 더 재미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점점 지루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들 중 주목받은 작품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듯해요. 개인적으로 바쁜 일도 많아서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아티스트랑 휴고가 5개씩 나눠 갖고 끝나버린 그런 시즌. 그 탓에 이 글도 덩달아 용두사미.
올해는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소박한 바람 아님? 응? 올해보다 더 좋은 영화들이 없어도 괜찮아요. 올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 많았잖아요? 부디 그런 영화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받았으면.
이제 2012/2013으로 넘어가야지. 올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하우즈댓무비와 함께 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