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명 깊게 본 영화가 그리워져서 DVD를 사거나 빌려 본 적은 있지만, 극장에서 상영 기간 중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극장에서 두 번째로 보았습니다. 이건 전부 멘티들 덕분입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거나 설계전공에 포함시키기 원하는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데, 멘티들과 이 영화를 같이 보기로 했었거든요. 저는 기다리기 힘든 마음에 유료시사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냉큼 보러 갔었고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기에 다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약속은 약속이기도 하고.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정말 좋던데요? 처음보다야 못했지만, 빠른 전개 속의 그 팽팽한 긴박박감만은 여전했습니다. 처음으로 영화를 볼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했고, 조금은 여유롭게 큰 그림 속에서 장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는 스토리 속에서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지금 이 대사가 이 자리에 왜 필요하며 이로 인해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발달되어 가는지, 이런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본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본 뒤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바로 대본에서 나온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다시 보니 더 놀랍기만 합니다. 애론 소킨 정말 대단합니다. 먼저 엄청난 양의 대사가 결코 허투루 씌여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글 자막으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한계가 눈에 보일 정도더군요. 한국 관객에게 익숙치 않은 문화나 레퍼런스가 생략되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눈치채셨다면 피식하실 수 있을 겁니다. (드라마 소프라노스나 영화 타워링의 언급 등) 종종 등장하는 전문용어들도 자막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정확히 잘 쓰인 것 같습니다. 뭐 근데 일단 기본적으로 주커버그가 쏟아내는 말을 모두 자막으로 옮긴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모든 장면이 아주 유기적이고 긴밀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은 물론이요, 과거에서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 그리고 현재에서는 두 개의 소송이 교차되는 와중에서도 말입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소송을 넘나드는 연결은 매번 자연스럽고 재치있습니다. 작가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소송 장면은 자칫하면 큰 의미 없이 단순한 사건과 사건의 연결에 그치고 말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모놀로그이자 아마도 당신에게 전율을 주었을 지도 모르는 장면인 마크 주커버그가 방 안의 모두에게 자신이 이 소송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를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일장 연설이나, 관객에겐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지만 두 인물에게는 그들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우정까지 무너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하는 동물 학대와 부정 행위 폭로전. 이 두 장면은 모두 과거 회상과 현재를 연결하는 과정 사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지난 리뷰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것 그대로입니다.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이 방대한 양의 대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노력만으로도 배우들이 참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사실 조연 배우들에 대한 생각은 좀 달라졌습니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난 뒤에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앤드류 가필드의 왈도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션 파커보다 마음에 들었었는데, 다시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거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아요. 션 파커가 워낙 얄미운데다 비호감이긴 하지만, 그건 배우가 그만큼 연기를 아주 능청스럽게 잘 해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사실 왈도라는 역할은
앤드류 가필드가 아니더라도 헐리웃의 젊고, 잘 생기고, 호감형인 다른 남자 배우들도 얼마든지 잘 해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아닌 션 파커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네요.
하지만 다시 봐도 왈도(에두알도)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속에서 가장 공감가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저 모든 게 안타깝기만 하던 처음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시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왈도가 없었더라면 페이스메쉬의 알고리즘도 없었을 것이고, 자본도 없었을 것이니, 페이스북은 더더욱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왈도는 처음부터 딱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주커버그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지만, 그 괴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보다 너무 커지는 바람에 이제는 놓아 줄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윙클보스, 이 쌍둥이들은 극중 주커버그의 대사처럼 결코 페이스북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설령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을 거구요. 주커버그는 어떤가요. 이 남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발명을 해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고 말잖아요. 등장인물 모두가 자기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향해 조금씩 달려나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처럼요.
기술적인 부분도 흠 잡을 데 없었습니다. 숨쉴 틈 없는 진행을 매끈하게 연결하는 편집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숨가쁜 진행과 공간적인 제약 탓에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는 촬영은 오프닝 크레딧에서 주인공이 기숙사로 뛰어가는 장면이나 조정 경기 등 의외의 순간들에서 이따금씩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음악과 음향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영화의 진행과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감각적인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음향. 액션이나 전쟁영화도 아닌 평범한 극영화에서 '음향 참 잘 썼구나'하는 생각이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특히 나이트클럽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을 그대로 두고 배우들이 소리를 지르게 하다니요.
생각하면 할수록 참 완벽하고 맘에 드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멘티들도 재밌게 보았다고 해서 기분도 좋았구요. 의욕을 불끈불끈 샘솟게 했나 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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