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4.

이 자리에는 제목을 적어 주세요

올해 관람한 외국영화들의 영어 제목과 한국어 제목에 대한 이런저런 잡담.

1.
올해 좋았던 영화들 중에 한 단어로 된 제목들이 꽤 보인다. 관사도 없이. 개봉작 중에서는 Beginners와 Senna가 참 좋았고, Bridesmaids나 Incendies도 만족스러웠던 편. 영화제에서 관람한 것들 중에서는 Carlos와 Armadillo가 인상적이었고, Tyrannosaur나 Weekend도 나쁘지 않았다. Melancholia는 보고 싶었는데 못 봐서 안타깝고.. 이번 주에 개봉하는 Drive와 Moneyball은 재미있겠지? Shame, Carnage, Hugo도 꼭 좀 개봉했으면.

2.
'OO의 OO'는 한 때 한국에서 지겹게 유행했던 제목. 영어 제목에도 자주 보인다. The King's Speech라든가 Winter's Bone이라든가 Sarah's Key라든가 Meek's Cutoff라든가.. 물론 's 대신 of를 쓰는 경우도 있다. The Tree of Life, Sound of Noise, Son of Babylon, The Ides of March.. 하지만 올해는 이를 뛰어넘는 제목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제발 of를 두 번이나 쓰진 맙시다.

3.
그러고 보면 Tinker Tailor Soldier Spy와 Martha Marcy Mary Marlene도 재미있음. 네 단어를 거침없이 나열하는 패기 넘치는 영화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네.. 사실 이런 스타일은 사자성어로 된 중국 영화 제목을 직역할 때 많이 보던 건데. People Mountain People Sea는 국내에서 개봉하긴 할까..

4.
모두를 만족시키는 번역이 어렵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더 브레이브'는 너무하잖아. '인 어 베러 월드'는 말할 것도 없고. 차라리 '세상의 모든 계절'이나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처럼 좀 고민한 흔적이라도 보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사실 나는 '사랑을 카피하다'도 썩 나쁜 제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저렴해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듣긴 했지만, 부산에서 쓴 '증명서'처럼 황당하지는 않잖아.

5.
사실 올해 개봉한 외국영화의 한국어 제목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다. 물론 엑싯 쓰루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원제를 충실히 번역해 줘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야'라는 단어의 느낌이 너무 맘에 들었다. 전주에서 쓴 '지나는'보다 영화의 느낌을 훨씬 더 잘 살려 주는데다 리듬감도 있다. 더 자주 쓰이는 '기념품점'이나 '기프트샵'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선물 가게'라는 선택에서도 뭔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6.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댓글 4개:

  1.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이나 세상의 모든 계절은 꽤 번역 제목을 잘 사용한 것 같았어요. 오히려 Bridesmaids는 신부들러리들 이런 식으로 직역한 것 보다 내 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친구간의 묘한 질투같은 것도 잘 느껴졌거든요. 저한테 올해 최악의 번역 제목은 역시 '더 브레이브'와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초[민망한]능력자들'입니다... 반면에 The Debt를 '언피니시드'로, The Adjustment Bureau를 '컨트롤러'로 한 건 좋았어요. 그리고 머니볼 재밌더라고요. 낄낄 :-)

    답글삭제
  2. 맞다.. 초 민망한 능력자들이 있었죠..

    답글삭제
  3.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괜찮지 않나 재밌는 것 같은데 그냥 Horrible보다 더 느낌 있고
    난 캡틴 아메리카를 돌려줬으면..

    p.s 태그 괄호를 썼더니 사라져 버려 다시 씀니다

    답글삭제
  4. ㅎㅎ 꺽쇠 괄호를 쓰면 태그로 인식해서 그런지 사라져 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직장상사의 제목에 대해서는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어요.

    답글삭제

댓글을 다실 때: 가급적 익명보다는 어느 분이 작성하셨는지 알 수 있게 이름/URL을 선택해서 남겨 주세요. "회사명" 자리에 이름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아, <>는 태그로 인식되니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