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왔는데, 아주 좋습니다. 모든 것이 '영화의 거리'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도 좋고, 차분하면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분위기도 마음에 드네요. 그리고 맛집! 일부러 맛집을 찾아 다닌 것도 아니고, 끼니 때마다 적당히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도 번번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줄서서 현장예매를 해 보겠다며 금요일 밤에 무리해서 내려갔으나, 과제를 하다 네시쯤 잠들었던데다 아침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어요. 아침 11시로 예정된 일루셔니스트를 꼭 보고 싶었는데 입석까지 매진.. ㅠㅠ 원래는 5일 새벽에 카를로스만 보고 바로 올라오려고 했었는데, 오후에 일루셔니스트까지 보고 가기로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사랑방까지 예약했어요. 카를로스 보고 들어가서 2시까지 자고 나오려고요.
첫날은 두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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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윌리엄스 믹의 지름길 |
1800년대 미국 개척자들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믹의 지름길(Meek's Cutoff)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독특한 웨스턴입니다. 영화는 짐마차를 끌고 정처없이 헤매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소 지루하게 출발합니다. 묵묵히 길을 걸어나가던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흥미로워지고, 인물들의 관계도 조금씩 변해 가기 시작합니다.
인물들의 배경은 거의 주어지지 않고, 내러티브나 설명은 극도로 자제되어 있는데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탓에 분명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영화 속에 빠져들어 등장인물들과 함께 길을 잃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황홀한 꿈과 같은 영화일 겁니다. 전 그 둘의 적당한 중간 쯤인 듯. 아마도 가장 주연에 가까운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미셸 윌리엄스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영화 자체가 배우의 연기에 주목하게 되는 영화는 아닌 것 같고요. 오랜만에 보는 윌 패튼과 폴 다노도 반가웠어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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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하브 호세이니 씨민과 나데르, 별거 |
올해 전주영화제의 개막작이자, 베를린영화제의 금곰상과 남녀연기상을 휩쓴 씨민과 나데르, 별거(Nader and Simin, A Separation)는 보는 내내 눈을 떼기 어려운, 아주 강렬한 영화였습니다. 이야기는 현대 이란을 배경으로 하여,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 이를 들어 주지 않는 남편의 실랑이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영화는 바로 지금 이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당면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와 도덕적, 종교적인 물음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요.
처음 이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이례적으로 금곰상과 남녀연기상을 모두 휩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과 이란영화계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다분히 정치적인 쇼가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그런 생각은 어느 정도 지워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게 되는 딜레마는 결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딪힐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물음들입니다. 이토록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아주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각본의 힘이 놀라울 뿐입니다. 결말도 아주 인상적이구요. 게다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도 훌륭합니다. 인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촬영도, 기교 없이 이야기를 재빨리 이어나가는 편집도 영화와 꼭 맞습니다. 한 번 더 보러 가게 꼭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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