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영화제가 열리면 주말에나 짬을 내서 다녀오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린이날이 끼어 있더라구요? 마침 자정부터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던 카를로스 심야 상영이 있는 거에요. 러닝타임은 무려 다섯시간 반. 처음에는 전날 밤에 내려가 카를로스만 본 뒤 첫차 타고 올라올 생각이었는데, 마침 운 좋게 오후에 상영하는 일루셔니스트 티켓까지 구하게 되는 바람에.. 좀 생각해 보다가, 아침에 영화 보고 나와서 사랑방에서 잠시 눈 붙인 뒤 한 편 더 보고 올라가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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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스 |
희대의 테러리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카를로스 자칼의 이야기를 5시간 반동안 풀어내는 카를로스 (Carlos)는 제가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들 중 가장 긴 영화이지만, 가장 짜릿한 영화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인물 주변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쫓아갑니다. 에피소드들은 단 한 번의 폭발로 순식간에 마무리되기도 하고, 도저히 언제 끝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납치와 감금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유럽 각지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를 넘나드는 이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던 청년은 성장과 몰락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병들고 살찐 외로운 신세로 홀로 남겨져 있습니다.
오만한 나르시스트이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로 가득찬 카를로스를 완벽히 표현해낸 에드가 라미레즈의 연기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오롯이 영화 전체를 짊어지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세상에 도전했고 역사에 버림받았던 그의 거대한 일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무엇보다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야심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토록 긴 시간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강렬한 흥분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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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루셔니스트 |
충분히 쉬고 나서,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를 보러 갔습니다. 여기에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나이든 마술사와, 그가 진짜 마술을 하고 있다고 믿는 소녀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고전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래서인지 더 짠하게 와닿는 것 같기도 해요. 무엇보다 영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던지. 모든 장면이 섬세한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또한 대사는 거의 없이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이야기를 주로 풀어나가는데,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아주 쓸쓸하기도 한 영화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다소 안타까운 결말로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지만, 영화 내내 보여준 재치있는 코미디와 유머는 마술처럼 남아 있습니다. 영화제의 마지막 영화로 참 적절했던, 가슴뭉클한 영화였어요. (7)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늦게라도 포스팅을 마무리하게 되어서 홀가분하네요. 전주는 처음이었는데, 영화도 분위기도 먹을거리도 모두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꼭 보고 싶었던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년에도 좋은 영화들 만날 수 있길.


도 참 대단한 영화였어요. 330분인데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다루면서도 미화도 경멸도 하지 않았더군요. 문득 생각난거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도 보고 싶더군요. 물론 극장에서 보고 싶단 얘기구요.
답글삭제체력적으로 지치긴 했지만, 극장을 나서는데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참 신기하죠. 사실 전 주변인물들 중 앤지가 아주 흥미로웠어요. OPEC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는데 나오지 않아 아쉽더라구요.
답글삭제혹시 영화 이름 앞뒤에 꺽쇠 괄호를 쓰셨나요? html 태그로 인식이 되어 표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ㅠㅠ 뒤의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는 Che: Part One과 Che: Part Two를 말씀하셨을 걸로 추측해 봅니다. 저도 궁금한 영화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