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9.

2011년 결산 (1) 들어가며

2011년에 관람한 외국영화들을 결산합니다. 2011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개봉한 영화 중 제가 본 58편의 작품이 대상입니다. 한국영화는 몇 편 보지 못했기에 딱히 간추릴 것이 없어 아쉽지만 제외하기로 했어요. 2012년에는 한국영화도 꼭 별도로 결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결산은 왜 하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미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해의 좋았던 영화들을 쭉 정리해 보면서 회상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거든요. 이런 영화가 있었지, 그래 이 연기는 참 좋았어, 아 그 장면은 정말 짠했는데.. 이렇게요. 그래서인지 결산을 할 때에는 아쉬웠던 점, 거슬렸던 점은 잠시 모른 체하고 좋았던 점에 집중하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고요.

앞으로 당분간 이어질 결산 시리즈는 작년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먼저 2011년 가장 좋았던 영화 열 편을 간추린 탑텐 리스트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영화들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지점들을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부문별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저만의 하우즈댓무비 시상식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보너스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이것저것 나열하며 추억에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2011년의 외국영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만든 스크랩북인 셈입니다. 동의하시는 부분도 있을 거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선택들도 물론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 각자가 가지고 계실 스크랩북과 비교하며 재미있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끝까지 고민하게 만든 네 편의 영화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14. 래빗 홀 Rabbit Hole

작년 말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모든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숨도 돌릴 겸 복잡한 마음을 안고 이 영화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더 우울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나름대로 위안을 받고 나왔어요. 잔잔하고 차분하게, 하지만 참으로 정확하게 그려낸 슬픔과 상실의 순간들이 가슴깊이 와 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카의 어머니 냇의 말대로,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그 무게감이 느껴질 때마다 가끔씩 꺼내어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문득 기억나는 영화 속 순간: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베카와 제이슨의 뒷모습


13.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Bridesmaids

작년 극장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저에겐 정말 소중한 영화입니다. 중간중간 진부한 소재나 설정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코미디는 각본만큼이나 그 실행과 전달이 중요하죠. 이 면면이 다채로운 배우들은 어느 하나 약하다 싶은 구석 없이 모두들 웃음을 제대로 전달할 줄 압니다. 그리고 때로는 웃음과 슬픔을 멋지게 버무리기도 해요. 신부파티 도중 갑자기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애니의 모습은 처절하게 웃기면서도 얼마나 짠하던지. 부수적이지만 유일한 남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어수룩한 경찰 로드가 여성들의 판타지에 그치지 않고 제법 사실적으로 그려진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득 기억나는 영화 속 순간: '인생'에게 두드려 맞는 애니


 


12. 머니볼 Moneyball (짧은 생각 보기)

돈과 공,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의 묘한 공기를 어느 정도는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큰 틀을 이루고 있는 두 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 많고, 화려하고, 이야기를 멋지게 포장하기 바쁜 각본이 돈이라면, 베넷 밀러의 은은하고 유려하지만 힘있는 연출은 묵묵히 날아가는 공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구 영화인 것 같지만 그 이상을 담고 있고, 전기 영화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여러모로 흥미로우면서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어요.

문득 기억나는 영화 속 순간: 불 꺼진 텅 빈 관중석에 홀로 앉아 있는 빌리 빈의 복잡한 표정


11. 파이터 The Fighter (리뷰 보기)

진부하고 뻔한 헐리웃의 또다른 권투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건 감독과 배우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중심을 이끄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나 이를 앙상블로 세련되게 뽑아내는 감독의 능력도 물론 감탄스럽지만, 사소한 요소들과 의외의 순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일곱 자매는 그 자체로 복잡한 하나의 캐릭터를 형성합니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대사를 통해 샬린과 미키의 진부한 로맨스에도 어느 정도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문으로 걸어 내려오는 샬린을 기다리는 아주 짧은 시간조차 흘려보내지 않고, 디키의 성격을 보여주며 영화의 생동감을 극대화시키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How you like me now?"에 대한 제 대답이 "Hell yeah!"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입니다.

문득 기억나는 영화 속 순간: 샬린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 디키


다음 포스팅에서는 탑텐 리스트가 이어집니다. 다른 날에 다른 기분으로 열 편을 꼽았다면 위의 영화들이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났으니 뭐..

댓글 2개:

  1. 작년 최고의 코미디 영화는 이라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영화이기도 하구요. 시퀄 얘기가 나오던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영님의 탑텐 리스트가 기다려집니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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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댓글에서 꺽쇠 괄호를 html 태그로 인식해서 무시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얘기하신 것 맞겠죠? 속편은 잘 상상이 안 가지만 재미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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