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3.

독특한 경험, 놀라운 영화 베리드 리뷰

Buried (2010)
Dir: Rodrigo Cortes

이라크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한 미국 남자. 정신을 차려 보니 작은 관 속에 묻혀 있다. 배터리가 닳아가고 있는 휴대전화와 함께. 영화 베리드는 한 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이 비좁은 관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은 오직 한 명 뿐인 셈이다. 파격적이다.


굉장한 아이디어 하나로 놀라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주는 작품이다. 사실 아주 작은 설정 하나로부터 시작해 거기에서 끝나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간소화되고 주제 의식은 더욱 분명해진다. 비좁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과, 관 속에서 주인공이 살아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엄청난 긴장감을 형성해 낸다.

그렇다고 결코 형식이 전부인 영화는 아니다. 극도의 형식적인 제약 속에서 오히려 독창성은 빛을 발한다. 협소한 공간에서 한 사람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치밀하고 풍부한 이야기 전개가 계속된다. 주인공 역을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 역할에 꼭 맞는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연기의 진정성만큼은 충분히 전달된다. 시각과 청각적인 즐거움도 흠잡을 데 없다. 촬영 기법을 보고 있으면 작은 상자 속을 보여주는 데 이렇게나 많은 방법이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이고, 서스펜스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음악과 음향도 영화의 느낌과 아주 잘 어울린다. 아무리 뛰어난 각본과 연출이 있다고 해도 기술적인 요소가 미흡했다면 근원적인 한계 탓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을 영화였기에 더욱 인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독창적인 형식과 극적인 서스펜스가 영화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면,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 뒤에 남는 것은 영화가 담고 있는 씁쓸한 주제 의식이다. 자신의 나라와 자신이 다니던 회사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채 남겨진 한 개인의 모습을 통해, 베리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론 전혀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전화 통화만으로 이 정도의 메시지를 비교적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올해 본 그 어떤 영화보다도 대범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들고 나타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을 다실 때: 가급적 익명보다는 어느 분이 작성하셨는지 알 수 있게 이름/URL을 선택해서 남겨 주세요. "회사명" 자리에 이름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아, <>는 태그로 인식되니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