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4.

2010년의 외국영화 - 탑텐 리스트

좋은 영화가 많아서 참 즐거웠던 한 해였습니다. 외국영화는 극장 개봉작 40편과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 8편을 관람했네요. 이 중 극장 개봉작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한국영화는 열 편도 보지 못해서 패스하구요..

올해는 좋은 영화, 특히 저를 가슴뛰게 하는 영화가 많아 행복했던 한 해였습니다. 좋았던 작품들을 부문별로 정리하며 회상해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사실 영화가 좋았으면 그냥 좋은 거지, 순서가 어떤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2010년의 영화들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만든 스크랩북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10.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크리스 샌더스, 딘 드블루아 감독. 5/20 개봉. 감상평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예상치 못한 신선한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할 때가 있다. 드림웍스의 또 다른 진부한 애니메이션일 줄만 알았던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나의 생각을 보기좋게 뒤엎었다.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어리버리한 소년이 번뜩이는 재치와 넓은 마음씨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설정, 아바타보다 모자란 점 하나 없어 보이는 기술적인 탁월함, 이름있는 스타들로 관객을 현혹시키는 대신 실제 캐릭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이끌어낸 훌륭한 목소리 연기, 애니메이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높은 수준의 촬영과 조명, 영화 분위기에 맞는 신비스러운 음악, 그리고 대범하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결말까지.


9. 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로만 폴란스키 감독. 6/2 개봉.


이 정도로 거대한 음모론을 담고 있는 영화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삐끗해도 진부한 싸구려 스릴러로 전락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로만 폴란스키의 노력으로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와 정치 풍자가 절묘하게 결합된 재치있는 스릴러가 되었다. 특히 차곡차곡 쌓아 나간,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결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일관되게 사용되는 불길한 느낌의 이미지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우중충한 음악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8. 밀크 Milk
거스 반 산트 감독. 2/5 개봉.


숀 펜의 놀라운 연기와 더스틴 랜스 블랙의 사려깊은 각본이 빛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가감없는 솔직함이다. 하비 밀크를 미화하거나 그의 사생활에서의 실수들을 변호하지 않는다. 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애써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댄 화이트를 무자비한 악당으로 몰아가는 대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솔직함 덕분에 큰 꿈을 꾸었던 한 위대한 정치가의 초상은 관객에게 억지 감동이 아닌 강렬한 울컥함으로 가슴깊이 다가오게 된다.


7. 예언자 A Prophet
자크 오디아르 감독. 3/11 개봉.


감옥 안팎에서 벌어지는 범죄 드라마이자 한 소년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한 이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자크 오디아르의 섬세하면서도 독특한 연출 덕분에 영화는 장르의 친숙함을 가까스로 탈출한다. 특히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사소한 행동 하나로 포착해내는 순간들, 예를 들어 공항 검색대에서의 주인공의 아주 작은 행동이나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인공이 짓는 미묘한 웃음은 머릿속에 인상깊이 새겨져 쉽게 떠나지 않는다.


6.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
리사 촐로덴코 감독. 9/2 개봉.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레즈비언 부부와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는 두 자녀. 전혀 다른 모습의 이 가족도 결국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어머니들은 오랜 결혼 생활에 가끔 지치기도 하고,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딸 조니는 슬슬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어린 막내아들 레이저는 아직은 이 독특한 가족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있다. 생물학적 아버지 폴의 등장으로 이들이 겪게 되는 혼란을 통해 이 영화는 진정한 가족이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5.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1/21 개봉.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을 표방하는 이 독특한 영화는 이제는 어떻게 만들어도 뻔할 것만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 아직도 새로운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시각으로 두 남녀의 사랑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가슴따뜻하게 써내려간 재치 넘치는 각본의 힘.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조셉 고든 레빗과 주이 데샤넬의 연기도 물론이지만,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다운 감각적인 영상과 다양한 형식의 시도 모두 어느 하나 흠 잡기 어려운, 보기 드문 로맨틱 코미디 수작.


4. 클래스 The Class
로랑 캉테 감독. 4/1 개봉.


프랑스의 한 공립 학교의 교실 하나를 현미경에 놓고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카메라는 한 학기동안 선생님과 학생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가까이서 쫓아가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생생하게 포착해 낸다. 그곳에는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다.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 같다는 한 학생의 말과 함께 학기는 끝이 나고, 좁은 공터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은 함께 축구를 한다. 텅 빈 교실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되지만, 스크린 속에서든 밖에서든, 교육은 계속된다.


3.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리 엉크리치 감독. 8/5 개봉. 짧은생각


영화 자체로도 긴장감 넘치는 훌륭한 탈출극이지만 우화의 힘은 그보다 더욱 강력하다. 사회 풍자와 철학적인 담론이 풍부한 영화 속 세계가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장난감들의 사회는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마이클 안트의 각본은 분명한 메시지를 힘있게 전달하면서도 웃음과 감동 역시 놓치지 않는다. 가슴뭉클한 마지막 장면은 15년에 걸쳐 우리와 함께 성장한 삼부작을 완벽하게 마무리짓는다.


2.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4/22 개봉.


시작과 함께 관객은 이라크 한복판에 내던져진다. 언제든 예고없이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로부터 시작해, 이야기가 진행되며 전쟁의 참담함이 뼛속까지 스멀스멀 파고들어 온다. 스릴 넘칠 줄 알았던 저격 전투는 실제로는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삶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자본주의와 전쟁의 참혹한 조합은 현상금 사냥꾼들을 이라크 한복판으로 이끌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온갖 종류의 극한 상황에서 수많은 폭탄을 해체한 베테랑조차도 한 명의 이라크 소년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과도 같은 전쟁에 중독되어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섬뜩함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1.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감독. 11/18 개봉. 리뷰


우정, 배신, 돈, 욕망, 권력, 계급, 질투.. 셰익스피어가 주커버그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다면 그의 비극은 한 편 더 늘어 있을지 모른다. 서로 다른 세 가지 관점을 동시에 들려주는 근사한 스토리텔링은 라쇼몽을 떠오르게 하고, 새로고침을 연신 눌러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정신을 완벽히 표현해 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감정과 이야기의 힘을 가진 이런 영화를 우리는 보통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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